
감정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실시간 댓글, 감정적 뉴스 소비, 극단적 표현이 일상화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내면의 중심을 잃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맹자(孟子)의 가르침은 단순한 고전이 아닌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나침반입니다. 이 글에서는 맹자가 말한 인간의 내면적 가치와 자제력, 그리고 감정이 아닌 도리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중심으로, 감정 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통찰을 주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감정보다 먼저 존재하는 ‘측은지심’
맹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한 마음’을 타고난다고 말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입니다. 이는 누군가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연민과 공감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감정은 방향을 잃었습니다. 분노가 공감보다 앞서고, 증오가 공론장을 지배합니다. 감정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감정은 타인을 위한 ‘측은’이 아닌, 자기 감정을 우선시하는 즉각적 반응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맹자의 ‘측은지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도덕적 판단의 뿌리이며, 내면에서 나오는 인간 본연의 도리입니다. 감정을 갖되, 그 감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되묻는 태도. 이것이 맹자가 말한 ‘선한 마음’의 출발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법은 배우지만, 다스리는 법은 배우지 못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맹자는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을 가지니, 그것을 살리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인(仁)’의 씨앗은, 훈련과 성찰을 통해 길러야 합니다.
분노의 시대, 맹자의 ‘의(義)’로 중심을 잡다
맹자는 감정이 들끓는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義)’, 곧 의로움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의는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서, 감정을 이기고 도리를 따르는 힘입니다. 오늘날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감정 대립’은 많은 경우 도리보다는 감정 해소에 목적이 있습니다. 누가 더 분노했는가, 누가 더 상처를 입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공적 판단은 사라지고 사적인 감정만 증폭됩니다. 맹자는 ‘의’를 단련하는 방법으로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제시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비난할 때, 그 비난이 과연 정당한가? 내 감정이 ‘정의’로 위장된 ‘욕망’은 아닌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사람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내면의 기준으로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맹자가 강조한 ‘의’는 외부 기준이 아니라, 내면에 새겨진 윤리감각의 훈련입니다. 분노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도리 있게 분노하는 것은 훈련이 필요한 기술입니다.
감정은 흔들리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맹자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중심 잡기’입니다. 감정을 억누르라는 것이 아니라, 감정 위에 도리와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이 흐르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감정이 내면의 근본을 흔들지 않도록 ‘정(定)’을 지킬 것을 강조했습니다. 맹자가 말한 ‘정심수기(正心修己)’, 즉 마음을 바르게 하여 나를 다스리는 것은 단순한 수양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감정적 혼란을 이겨내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특히 그는 ‘불동심(不動心)’, 즉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이의 말, 세상의 소문, 자기 감정의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는 자세. 그것은 참된 인간됨의 조건이자, 오늘날 더 절실한 능력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 말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감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내면의 기준을 따를 것인가?” 맹자는 그 기준이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 즉 내면의 네 가지 근본 덕성이라고 봤습니다.
감정이 넘쳐나는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에 무조건 휩쓸리는 상태입니다. 맹자는 그 시대에도 감정의 본질과 역할을 꿰뚫고, 그 위에 도덕과 윤리를 세우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지금 우리가 다시 맹자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감정을 따라 말하지만, 삶은 도리를 따라가야 하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감정에 휩쓸리고 있다면, 맹자의 말을 떠올려보세요. “사람은 누구나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을 깨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