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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먼저 울었다 – 이수현이 남긴 우정

by makecompetitivepeople 2025. 12. 15.

열차가 나를 향해 오지만 선로에 빠진 사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수현 (1974)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 한 일본인이 선로에 떨어졌고, 이를 본 대한민국 유학생 이수현은 주저 없이 선로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함께 뛰어든 일본인과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비극은 전 세계를 울렸고, 특히 일본 사회는 가장 먼저 슬퍼하고 기억했습니다.

 

 국적도,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이수현의 행동은 인간의 존엄성과 이타심, 국경을 넘은 우정이 무엇인지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 사회가 이수현을 어떻게 추모했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이 이야기를 왜 다시 떠올려야 하는지를 살펴봅니다.

비극의 순간, 그리고 시작된 감동

 이수현은 당시 일본 아카몽카이 어학교에 다니던 유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언어 공부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사이의 민간 교류에도 관심이 많았고 자비로 어려운 일본 노인을 도왔던 기록도 있습니다.

 

 사건 당일,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보고 그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 짧은 3초의 선택, 그리고 영원한 이별.

그의 희생은 즉시 일본 언론에 보도되었고, 많은 일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모행렬에 참여했습니다. 현장에는 수천 개의 국화와 편지가 쌓였고, 그의 이름은 “우리를 지켜준 한국 청년”으로 불리게 됩니다.

일본 사회의 반응과 추모

 일본 정부는 그를 “정의로운 외국인 청년”으로 공식 예우했으며, 일본 총리와 도쿄 지사는 그의 부모를 초청해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도쿄 신오쿠보역에는 그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고, 그 앞에는 매년 꽃과 편지가 놓입니다. 이수현 장학재단은 일본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로 설립되었고, 지금까지도 한일 양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 중학생은 추모식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수현 씨는 우리에게 국경보다 소중한 마음을 가르쳐 주셨어요.”

 

 이 말은 일본 사회가 그의 죽음을 단지 ‘외국인의 희생’으로 끝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

 이수현의 이야기는 단순히 ‘아름다운 희생’으로만 남아선 안 됩니다. 그는 말로만 ‘우정’을 외치던 시대에,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한일 관계는 여전히 정치적 갈등과 역사적 논쟁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수현은 정치가 아닌 사람의 마음으로 연결되는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의 행동은 말보다 빠르고, 정치보다 깊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신오쿠보역 앞에 놓이는 국화 한 송이는 “우정은 가능하다”는 조용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마치며

 이수현의 용기는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한 사람의 생명’을 먼저 본 진짜 시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의 죽음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의 ‘선택이 인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크고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수현처럼, 단 3초의 용기와 행동이면 됩니다.